세계 GDP 과반이 자연에 의존
자연의 손실은 비즈니스 손실
정부·기업 관심은 걸음마 수준
‘자연의 파리협약’대비 급선무

진양희(법무법인 디라이트 ESG지속가능센터 연구소장)
진양희(법무법인 디라이트 ESG지속가능센터 연구소장)

‘이 자켓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뉴욕타임스에 전면으로 게재된 파타고니아의 도발적인 광고 문구다. 옷을 파는 회사가 옷을 사지 말라는 광고를 대놓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파타고니아의 시작은 암벽등반 매니아였던 이본 쉬나드가 만든 등반장비 회사였다. 등반할 때 암벽에 박아서 사용하는 피톤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이 피톤이 바위를 심하게 훼손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생산을 전면 중단하게 된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즐기는 쉬나드는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제품을 연구했고 마침내 알루미늄 쐐기를 출시하게 된다. 등산 장비 외에도 기능성 의류와 같은 수요가 늘어 아웃도어 시장이 커지게 되고 친환경 브랜드를 표방하며 사명도 파타고니아로 지었다. 파타고니아는 ‘지구가 목적, 사업은 수단’이라는 창업자의 철학을 반영하며 이 세상을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옳은 일을 하려는 기업이다.

 

친환경·가치소비 대세 자리매김

자켓을 사지 말라는 광고가 주는 의미는 우리가 자켓을 사든 무엇을 소비하든 나의 소비가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깊게 생각해 보고 가능한 적게 소비하라는 일종의 메시지였다. 그것도 대량소비를 조장하는 블랙프라이데이에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광고 이후에 파타고니아는 매출이 오히려 늘었고 많은 사람들이 친환경과 가치소비에 눈뜰 수 있게 했다.

기업들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을 상당 부분 자연에 의존하고 있다. 모든 비즈니스에서 직접적으로 또는 공급망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연 자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한 컨설팅회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를 약 150조달러, 전 세계 GDP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로 예측하기도 했다.

아울러 세계 GDP의 절반 이상이 자연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중 44조달러는 잠재적으로 자연손실에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렇듯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에 주목해 자연을 경제적 관점에서 평가해 일종의 자본으로 보는 개념이 ‘자연자본(Nature Capital)’이다.

자연자본은 크게 자연자원, 생태계서비스, 생물다양성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자연자원은 물, 공기, 광물, 에너지원과 같은 물리적 자원을 말하며 경제활동의 기본적인 입력물이 된다. 생태계 서비스는 안정적인 생태계가 주는 효용에 집중하는데 기후조절, 영양분 순환, 토양의 비옥도 유지, 수질 정화, 자연재해의 완충효과 등에 도움을 준다.

생물다양성은 자연자본의 개념에서 중요한 요소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 종과 그들이 살아가는 생태계, 그리고 이들 사이에 복잡한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생태계의 안정성과 회복력에 기여하며 그 자체로 의약품이나 식품, 자원으로서의 경제적 가치가 매우 높다.

자연의 손실은 곧 비즈니스의 손실이라고 할 만큼 비즈니스에 있어서 자연자본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데 기후위기로 인한 탄소 관련 규제뿐 아니라 자연재해로 인한 비용의 증가, 원자재 공급 불안으로 공급망이 악화되는 등 리스크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TNFD 이니셔티브 출범

실제로 지난 2021년에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주도해 자연 리스크와 기회에 대한 재무적 영향을 인식하고 관리하기 위해 ‘TNFD(Taskforce on Nature-realated Financial Diclosure)’ 이니셔티브가 출범했으며 기업이 자연 관련 위험과 이를 관리하는 방법을 투자자에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TNFD의 권고안은 ‘자연의 파리협약’이라고 불리는 제15차 생물다양성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내용에 부합하도록 개발됐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2030년까지 훼손된 육상, 담수 및 연안⋅해양 생태계의 30% 이상을 복원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공공·민간 등 모든 종류의 재원에서 매년 2000억달러(약 260조원) 이상을 조달하기로 하는 등 23개 실천목표 이행 및 평가 △생물다양성 손실을 멈추는 데 필요한 재정과 현 수준 간의 격차 해소를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가 생물다양성에 해로운 보조금을 매년 5000억달러 이상 점진적으로 줄이거나 개혁 △개도국에 지원하는 국제 재원 흐름을 2025년까지 매년 200억달러 이상, 2026~30년에는 매년 300억달러 이상 늘림 등이다.

TNFD에서는 이러한 자연자본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가 운영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 경영전략, 위험관리, 평가지표 및 목표에 관해 공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이슈는 온실가스 감축이나 탄소중립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가 됐지만, 자연자본에 대한 관심은 우리 정부나 기업 모두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하지만, 굳이 화폐가치로 따지지 않아도 자연과 생태는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과도 같다는 말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인류가 자연자본의 혜택을 향후 50년, 100년, 그 뒤에도 계속 활용하기를 원한다면 기업들도 더 늦기 전에 자연과 생태계를 어떻게 보호하고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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