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반도체 시장의 ‘슈퍼호황’에도 국내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상장사의 절반 이상이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팹리스에 밀려 한국 중소기업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는 팹리스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이달 중 비메모리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최근 업계와 기업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팹리스 상장사 24개 가운데 지난해 영업손실을 낸 기업은 13곳으로 전체의 50%가 넘는다.

지난 2016년만 해도 이들 24개 기업 가운데 7개 업체만 적자였는데, 2년새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팹리스 매출액 상위 1〜7위 기업이 모두 흑자를 냈을 뿐 8위 이후로는 적자를 면한 기업이 4곳뿐이었다.

또 반도체 호황기였던 지난해 이들 팹리스 상장사의 매출 총액은 1조8959억원으로 전년보다 2.0% 늘어나는데 그쳤다.

여기에 팹리스 매출 1위인 LG그룹 계열사 실리콘웍스가 24개 기업 전체 매출액의 40%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중하위권 기업은 성장이 정체돼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팹리스 업체는 200여개에 불과해 기술력과 가격 측면에서 경쟁력이 약하다”며 “반면 중국에는 1300여개의 업체가 포진해 있어, 경쟁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이 중국 쪽에 눈을 돌리면서 국내 팹리스가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미국이 68%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대만은 16%, 중국은 13%를 기록했다. 한국은 1%미만의 미미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특히 중국이 빠르게 비메모리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며 미국과 대만을 본격적으로 추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발간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기회 및 위협요인’에 따르면 메모리와 파운드리 등 제조 산업은 대규모 설비투자와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팹리스는 설계자의 역량이 중요해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기에 유리하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을 바탕에 둔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이달 중에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설비·연구개발(R&D)투자와 상생협력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이달말께 극자외선(EUV) 기술 기반의 5나노 반도체 공정 개발 성공을 발표하면서, 시스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비메모리 부문에서도 투자에 나서는 동시에 국내 중소 팹리스 업체와 소재·장비 업계의 역량 강화에 ‘지원군’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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